토양 없는 사유
이 짧은 에세이에서는 글쓰기의 수행성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. 내 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, 나는 질→양→질의 도식을 논의 전체에서 즐겨 썼다. 그리고 뒤에서는 이 두 가지 범주가 사실은 연속적이라고 주장했다. 그러면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 된다. 왜냐하면 글쓰기는 질→양(기호)→질(의미)의 도식의 대표적인 예시기 때문이다. 왜 양을 거쳐서 질에 도착하는가? 당연한 질문이겠지만, 전부는 아니더라도 아주 많은 것이 양을 경유해서 질에 도착한다. 예를 들어 우리는 현실의 어떤 것을 찍은 영화를 보고 다시 해석한다....